서동요의 주인공 무왕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왕궁리
-[13일차]한국카메라 한국을 담다-
올림픽 축구 동메달 결승전을 새벽부터 시청 후
잠을 더 청하지 않고 준비를 해서 광주에서 왕궁리로 출발을 했다.
온라인 검색이나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에는 왕궁리 5층 석탑에 대한 것만 나와서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탑을 보고 끝나겠구나. 라고 생각을 하고 왔다.
그렇게 약 두 시간이 걸려 도착한 왕궁리에서는
[왕궁리유적 : 백제 왕궁 터는 용화 산을 뻗어 내린 능선의 남측 끝부분 해발 40m 내외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구릉을 깎아 내리거나 낮은 곳은 흙을 쌓아 평탄대지를 만들고 그 위에 왕궁을 조상하였다.
왕궁의 외곽을 둘러싼 담장은 잘 다듬어진 사구 석과 장대석, 껜돌을 사용하여 폭 3m규모로 만들었는데, 사람들의 통행이 가장 많았을 것으로 보이는 남측 담장은 잘 다듬어진 사구 석과 장대석으로 정성들여 만들었다. 왕궁의 규모는 남북 490m, 동서 245m로 약간 틀어진 긴 네모꼴이며, 담장의 아래 안쪽과 바깥쪽에는 폭 1m정도로 편평한 돌을 깔아 물에 의해 다장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고 보도로도 이용할 수 있게 하였다.
이 왕궁리는 백제 왕궁의 완전한 형태로 완성된 왕궁이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 공식 소개문 中]
백제의 양식으로 전형적인 양식으로 만들어진 상당한 규모와 웅장함을 가진 왕궁리 5층 석탑도 볼 수 있었고
기존에 왕궁터를 말해주는 각종 터들도 만나 볼 수 있었다.
이 왕궁터는 백제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무왕(서동요의 주인공인 그 왕이다.)때 궁 이전을 위해 만들어졌다가 절로 변경이 되어 사용되어진 약간? 신기한 터였다.
뿐만 아니라 궁터 옆쪽에 별도의 왕궁리 전시관을 운영하여 백제의 문화를 몸소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충청남도에 살면서 백제에 대해서는 부여 / 공주가 다라고 생각했는데 그러한 생각을 바꿔주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공동화장실의 사용법과 후기등도 볼 수 있어? 약간 충격 아닌 충격이었다.
이번에 12박 13일의 여행을 하면서 상당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미술사에 내가 얼마나 무지했구나를 느꼈으며, 우리나라에 소중한 보물들이 이렇게 많았구나를 말이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이 아름다운 것들 멋있는 것들을 어떻게 마케팅과 결합을 시켜야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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